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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선언서 보성사판

3·1운동 당시 최남선이 기초하고 보성사에서 인쇄한 독립선언서이다. 1줄에 38자씩 총 46줄의 횡서 본문과 공약 3장, 민족대표 명단이 실려 있다.
독립선언서 보성사판

3·1운동 당시 최남선이 기초하고 보성사에서 인쇄한 독립선언서이다. 1줄에 38자씩 총 46줄의 횡서 본문과 공약 3장, 민족대표 명단이 실려 있다.

제암리·고주리 학살사건

일제는 불안정한 정국을 수습하고 만세운동의 진압과 주도자 체포를 위해 1,2,3차 검거반을 편성하여 화성 전역에 파견하였다. 이들은 만세운동이 일어난 각 마을에 불을 지르고 만세운동의 주도자들을 체포하였다. 2차 검거반이 장안·우정·송산 지역을 휩쓸며 진압 활동을 하고 있을 때 발안의 수비를 명령받은 아리타 도시오(有田俊夫) 중위는 4월 13일, 11명의 보병을 이끌고 화성에 도착하였다. 이들은 우정면을 습격하여 화산리의 김연방과 김태현을 보복·학살하였다. 이어 아리타는 살상·방화·파괴 등 격렬한 수단을 동원한 향남·팔탄 지역 만세운동의 근거지를 제암리와 고주리로 판단하였고, 정미업자 사사카와 순사보 조희창의 안내를 받아 제암리로 향하였다. 제암리에 도착한 아리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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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는 불안정한 정국을 수습하고 만세운동의 진압과 주도자 체포를 위해 1,2,3차 검거반을 편성하여 화성 전역에 파견하였다. 이들은 만세운동이 일어난 각 마을에 불을 지르고 만세운동의 주도자들을 체포하였다. 2차 검거반이 장안·우정·송산 지역을 휩쓸며 진압 활동을 하고 있을 때 발안의 수비를 명령받은 아리타 도시오(有田俊夫) 중위는 4월 13일, 11명의 보병을 이끌고 화성에 도착하였다. 이들은 우정면을 습격하여 화산리의 김연방과 김태현을 보복·학살하였다. 이어 아리타는 살상·방화·파괴 등 격렬한 수단을 동원한 향남·팔탄 지역 만세운동의 근거지를 제암리와 고주리로 판단하였고, 정미업자 사사카와 순사보 조희창의 안내를 받아 제암리로 향하였다. 제암리에 도착한 아리타는 순사 1명에 보병 2명을 소대의 반대 방면에 배치시켜 퇴각로를 차단하였다. 이후 15세 이상의 남성을 교회로 불러 모아 교회 안에 가둔 뒤 불을 지르고 총을 쏘아 23명을 학살, 마을을 불태웠다. 제암리에서 만행을 저지른 후 이웃마을 고주리로 넘어간 아리타는 천도교 전도사로 활동하며 화성의 독립운동을 지도한 김흥렬 일가족 6명(김흥렬, 김성열, 김세열, 김주업, 김주남,...

제암리·고주리 학살사건

일제는 불안정한 정국을 수습하고 만세운동의 진압과 주도자 체포를 위해 1,2,3차 검거반을 편성하여 화성 전역에 파견하였다. 이들은 만세운동이 일어난 각 마을에 불을 지르고 만세운동의 주도자들을 체포하였다. 2차 검거반이 장안·우정·송산 지역을 휩쓸며 진압 활동을 하고 있을 때 발안의 수비를 명령받은 아리타 도시오(有田俊夫) 중위는 4월 13일, 11명의 보병을 이끌고 화성에 도착하였다. 이들은 우정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