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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츠 제암리·고주리 학살사건 전 세계로 알려진 일제의 만행

일제는 불안정한 정국을 수습하고 만세운동의 진압과 주도자 체포를 위해 1,2,3차 검거반을 편성하여 화성 전역에 파견하였다. 이들은 만세운동이 일어난 각 마을에 불을 지르고 만세운동의 주도자들을 체포하였다. 2차 검거반이 장안·우정·송산 지역을 휩쓸며 진압 활동을 하고 있을 때 발안의 수비를 명령받은 아리타 도시오(有田俊夫) 중위는 4월 13일, 11명의 보병을 이끌고 화성에 도착하였다. 이들은 우정면을 습격하여 화산리의 김연방과 김태현을 보복·학살하였다.
이어 아리타는 살상·방화·파괴 등 격렬한 수단을 동원한 향남·팔탄 지역 만세운동의 근거지를 제암리와 고주리로 판단하였고, 정미업자 사사카와 순사보 조희창의 안내를 받아 제암리로 향하였다. 제암리에 도착한 아리타는 순사 1명에 보병 2명을 소대의 반대 방면에 배치시켜 퇴각로를 차단하였다. 이후 15세 이상의 남성을 교회로 불러 모아 교회 안에 가둔 뒤 불을 지르고 총을 쏘아 23명을 학살, 마을을 불태웠다. 제암리에서 만행을 저지른 후 이웃마을 고주리로 넘어간 아리타는 천도교 전도사로 활동하며 화성의 독립운동을 지도한 김흥렬 일가족 6명(김흥렬, 김성열, 김세열, 김주업, 김주남, 김흥복)을 잔인하게 살해한 뒤 시체를 짚으로 덮고 불에 태우는 만행을 저질렀다.

제암리·고주리 학살사건은 3.1운동 기간 중 일제가 저지른 가장 대표적이고 폭압적인 만행으로, 커티스(R.S.Curtice, 미국 부영사), 테일러(A.W.Taylor, 재팬어드버타이저 기자), 언더우드(H.H.Underwood, 선교사), 스코필드(F.W.Schofield, 선교사), 로이즈(W.M.Royds, 영국 대리영사), 노블(W.A.Noble, 선교사) 등이 작성한 보고서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발간한 문서를 통해 전 세계로 알려지게 되었다. 제암리·고주리 학살사건은 일제의 학살 만행과 비인도적 식민 지배를 폭로하고 우리 민족의 독립에 대한 열망과 당위성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파리강화회의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표단

독립기념관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표단을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하여 세계 각국에 대한민국의 일제 식민지 상황을 알리고 독립을 호소하였다.

 


 

L’INDÉPENDANCE DE LA CORÉE ET LA PAIX

1919 | 18.7 × 27.4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리위원부에서 발행한 책자이다. 한국 독립의 당위성, 3.1운동에 대한 일제의 비인도적 탄압과 만행에 관한 내용 담겨있다. 특히 일제의 보복으로 폐허가 된 화성의 모습과 제암리의 피해 상황을 알 수 있는 사진이 수록되어 있다.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1920년 이후 | 23.3 × 15.3 | 복제본 | 독립기념관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한적십자회에서 발행한 3.1운동 영문 화보집이다. 3.1운동 직후 일제의 보복으로 폐허가 된 화성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사진이 수록되어 있다.

 


 

La Corée Libre

1920 | 안창호기념관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리위원부에서 한국 독립의 당위성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발행한 문서이다. 1920년 11월에 발행된 제7호 문서에는 일제의 보복으로 폐허가 된 화성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사진이 수록되어 있다.

 


 

Japanese Atrocities in Korea

1920년 이후 | 복제본 | 연세대학교

구미위원부의 필라델피아 한국통신부에서 발행한 선전 팸플릿이다. 총 15쪽 분량이며, 표지에는 ‘일제의 선전에 의해 강조되고 설득력을 얻게 된 보도들’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3.1운동 당시 일제의 잔혹 행위와 폐허가 된 화성의 피해 모습, 제암리 학살사건 관련 사진이 실려 있다.

 


 

The Case of Korea

1921 | 14.5 × 20.8

독립운동가 정한경이 미국에서 저술한 책이다. 일제의 고문과 탄압, 가혹한 식민통치, 독립운동 등의 내용이 실려 있다. 특히 제암리 학살사건과 화수리·수촌리에서 자행된 일제의 만행 사진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커티스가 미국 총영사 버그홀츠(Bergholz)에게 보내는 보고서

1919 | 국회도서관

미국 영사관은 3.1운동에 대한 일제의 비인도적 탄압에 대해 적절한 항의를 요구하는 선교사와 자국민의 요청으로 실상 파악에 나섰다. 1919년 4월 16일, 서울 주재 미국 영사관 커티스 영사는 선교사 언더우드와 함께 3.1운동에 대한 일제의 만행을 조사하기 위해 제암리에 방문하였다. 사건 현장을 돌아본 뒤 그날의 참상을 6~7쪽에 걸쳐 생생하게 보고하였다.

 


 

제암리 학살사건 일본군이 자행한 잔혹행위에 관한 보고서

1919 | 독립기념관

스코필드가 제암리·수촌리 등을 방문하여 일제의 잔혹행위에 대하여 직접 보고 들은 이야기를 해외에 알리기 위하여 작성한 보고서이다.

 


 

상해판 독립신문 제3호

1919 | 복제본 | 독립기념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상해에서 발행한 1919년 8월 29일자 독립신문이다. 3.1운동 당시 화성의 피해 사진이 실려 있으며, 사진 하단에는 ‘왜(倭) 불에 탄 집터에 앉아 왜(倭) 칼에 죽은 어린 누이를 곡(哭)하는 두 아이’라고 적혀 있다.